유전자 편집 돼지 장기 이식, 전환점 도달?
3년간 여섯 번째 이식, 생존기간 60일 돌파, 임상시험 허가
이날 미국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의료진은 지난달 25일 뉴햄프셔주에 사는 말기신장질화 환자 팀 앤드류스에게 미국 생명공학회사 이제네시스(eGenesis)에서 개발한 유전자 편집 돼지 신장 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발표했다. 앤드류스는 수술 후 면역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1주일 만에 퇴원할 정도로 상태가 안정적이라고 의료진은 전했다.
앤드류스는 지난 2년의 대부분을 투석에 보내야 했고 새로운 신장을 위해 이식 대기자 명단에 올랐지만 혈액형이 O형이어서 순번을 기다리기 힘든 상황이었다. 미국에서 새로운 신장 이식을 받기까지 평균 3~5년이지만 O형 혈액을 가진 사람은 최대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또 장기적 투석을 통해 5년을 더 살 확률은 약 35%에 불과하다. 앤드류스의 의료진은 그가 향후 5년 안에 신장 이식을 받을 확률이 약 9%라고 추정했다.
앤드류스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돼지 신장 이식 제안을 받자 주저함 없이 받아들였다며 “어둠 속에서 갑자기 빛을 본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수술은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임상시험용 의약품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접근 확장 프로그램, 일명 ‘자비로운 사용’을 통해 이루어졌다.
앤드류스는 2022년 1월 세계 최초로 유전자 변형 돼지 심장을 이식한 데이비드 베넷 이후 미국에서만 여섯 번째 유전자 변형 돼지 장기이식자다. 신장 이식만 놓고 보면 네 번째다.
앞서 장기이식을 받은 4명은 모두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25일 다섯 번째 이식수술을 받은 앨라배마주 여성 토와나 루니(53)는 74일째 건강하게 살아있다. 루니는 현재 수술을 받은 뉴욕에서 생활하며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추적 관찰을 받고 있다. 그는 돼지 장기 이식 후 최장기 생존자인 동시에 돼지 장기가 장기 기증의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과학자들은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로 돼지의 DNA를 변형시켜 인체에 이식할 경우 거부반응이 적도로 만들고 있다. 이제네시스의 돼지들은 거부 반응, 장기 크기, 돼지의 레트로바이러스 등 여러 잠재적 문제를 제거 또는 관리하기 위해 60개 이상의 유전자편집을 거친다.
유전자편집 돼지를 공급하는 또 다른 생명공학기업인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United Therapeutics Corporation)는 이번 주 FDA로부터 10개의 유전자 편집이 이뤄진 돼지 신장을 이용한 이종 이식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다는 승인을 받았다. 이 회사는 2025년 중반에 말기 신장 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6건의 초기 이식 중 첫 번째 이식을 수행할 예정이며, 임상시험을 총 50명의 환자로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임상 시험 승인은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네시스의 마이크 커티스 최고경영자(CEO)는 “그 동안 우리는 이 명확성의 순간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토와나 루니의 장기 이식과 치료에 참여한 뉴욕대(NYU) 랭곤 헬스의 제이미 로크 박사는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이종이식 분야에서 수십 년간 찾아 헤매던 “성배를 발견하는 순간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로크 박사는 서로 다른 유전자 모델을 가진 여러 회사가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것이 이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람마다 유전자 편집에 대해 다르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으며, 일부는 서로 더 잘 일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유전자 편집 돼지 장기 이식은 장기 대기자 명단에 오를 자격이 없을 정도로 심각한 건강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장기 기증자보다 이식이 필요한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규모 임상시험이 성공적 결과를 거둔다면 유전자 편집 돼지가 현실적 대안이 될 날도 멀지 않게 된다.
로크 박사는 돼지 신장 이식 후 거의 매일 루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그녀가 현재 최고의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수술실에서 신장이 소변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을 본 이후 그녀의 얼굴은 생기가 가득하다“며 “90일을 지나면 실제로 이종 이식이 환자가 인간 이식에서 본 것과 유사한 생존 혜택을 얻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앤드류스는 이식 후 일주일 만에 퇴원했지만 지속적 모니터링을 받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 클리닉에 돌아와 혈액 검사를 받고 있으며 심장리듬 같은 바이탈 신호를 원격 확인할 수 있는 장치들도 착용하고 있는 상태다. 또 인간 기증자의 신장과 마찬가지로 몸이 장기를 거부하지 않도록 평생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하지만 앤드류스는 “수술 후 일어나자마자 투석의 구름이 사라지고 활력을 되찾았다”며 “기적과도 같았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번 이식은 단순히 저 개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투석으로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3700만 명의 성인이 만성 신장질환을 앓고 있으며, 그 중 약 80만 명이 말기 신부전을 앓고 있다. 로크 박사는 “일반적으로 매년 8만~10만 명의 환자가 대기자 명단에 올라가 있으며 연간 약 2만5000~2만8000건의 신장 기증을 통한 이식수술이 이뤄진다”며 그렇기에 이식수술을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유전자 편집 돼지 신장 이식은 “희망의 빛”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