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외상센터 의사들 “너무 멋있어”...그들의 현실은?

[김용의 헬스앤]

 

중증외상센터 의사들 “너무 멋있어”...그들의 현실은?
드라마 속의 중증외상센터는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우선 중증외상 분야를 원하는 전문의를 찾는 것이 어렵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TV 드라마나 영화 속의 의사는 필수의료 전문의가 대부분이다. 밥 먹다가도 응급환자 이송 연락에 급하게 수술실로 달려간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위급상황에 뛰어든다. 심장 수술을 하면서 얼굴에 환자의 피를 뒤집어 쓰기도 한다. 환자가 쓰러진 곳까지 헬기를 타고 날아간다. 시청자들은 필수의료 의사의 모습에 마음 졸이고 박수를 치기도 한다. 이런 의사의 모습에 반해 의대 진학을 꿈꾸는 고교생들도 있을 것이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화제...필수의료 의사의 삶은?

요즘 필수의료 의사의 모습을 그린 드라마(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가 국내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내용은 기존의 메디컬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의사는 환자를 보자마자 증상을 파악하여 빠르고 정확한 진단-치료로 생명을 살린다. 톡 쏘는 사이다 같은 내용은 시청자들의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준다. 이 드라마의 원작은 실제 의사 출신 한산이가(본명 이낙준) 작가의 웹소설이다. 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갈등의 사실감이 높은 이유다. 이낙준 작가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본관이 한산 이씨여서 ‘한산이가’ 필명을 지었다고 한다.

중증외상센터는 교통사고, 대형재해 등으로 인해 중증의 외상을 입은 환자가 전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기관이다.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 전문의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매일 분초를 다투는 심각한 중증외상 분야는 업무 강도가 세다. 고난도 수술이 많아 스트레스가 매우 심하다. 의사로서 사명감은 높지만 삶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필수의료 전문의가 부족한 병원에선 가족과 식사 중에도 응급실로 달려가야 한다. 갑자기 발생하는 응급환자가 대부분이어서 병원 안에서도 제대로 휴식조차 할 수 없다. 항상 대기해야 하는 ‘대기 인생’이라는 자조감도 느낄 수 있다.

중증외상센터 현실은 정반대...일부 병원 경영진의 곱지 않은 시선

드라마 속의 중증외상센터는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우선 중증외상 분야를 원하는 전문의를 찾는 것이 어렵다. 전공의들도 외면한다. 삶의 질은 떨어지는데 보상은 충분하지 않다. 중증외상센터 자체가 재정적으로 힘든 곳이 많다. 고난도 수술을 할수록 적자가 쌓이는 구조다. 환자 한 명을 살리기 위해 의사. 간호사 등 수많은 의료진이 동원되기 때문에 인건비 건지기도 쉽지 않다. 재정을 강조하는 일부 병원 경영진은 중증외상센터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따라서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필수다.

중증외상센터는 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 필수의료 전문의들로 구성되어 있다. 수술 할수록 손해 나는 구조는 ‘원가 보전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수술이 기본치료인 외과는 2022년 원가 보전율이 84%에 불과했다. 신경외과도 84%이고 산부인과는 고작 61%이다. 반면에 지원 분야인 방사선종양학과는 252%였다(국민건강보험공단-김윤 국회의원실 자료). 중증외상센터를 책임지는 센터장은 병원 경영진의 돈 얘기에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다. 중증외상센터는 수술이 기본 치료인데, 갈등 끝에 “그러면 응급 환자를 받지 말라는 것이냐?”는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 전국 대다수의 중증외상센터가 이런 고민을 안고 있다.

내 가족이 한밤 중에 크게 다치면...어디로 가나?

내 가족이 한밤 중에 크게 다치면 응급실이나 중증외상센터를 떠올린다. 재정난으로 중증외상센터가 자꾸 없어지면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중증외상센터장이 ‘돈’ 계산 대신에 오직 응급환자를 살리는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에 대한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이 굳건해야 한다. 의대 정원을 늘려도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해소되지 않으면 응급수술 의사 부족 문제는 여전할 것이다. 필수의료의 수가(건강보험 적용)를 뜯어 고쳐 의사들이 마음고생 하지 않고 진료-수술에만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병원에 수술 의사가 없어 이곳저곳을 헤매다 차 안에서 사망하는 비극적인 일이 또 발생할 수 있다.

필수의료 의사는 다른 과에 비해 시간과 노력은 더 들지만 보수는 상대적으로 적고 미래도 불투명하다. 피부-미용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개원이 쉽지 않다. 동네병원을 차려도 필수의료로는 적자를 볼 수 있다. 수술 과정의 의료분쟁으로 소송까지 하면 지금까지 번 돈을 다 날릴 수 있다. 중증외상센터는 종합-대학병원에 벌어주는 수익이 다른 과보다 적다 보니 경영진의 눈총을 받기 일쑤다. 병원 경경진은 필수의료 의사를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줄이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의사가 ‘돈, 돈, 돈...“ 생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명감 하나로 필수의료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수술할수록 적자 쌓이는 구조...정부-지자체 지원 굳건해야

의대 우수 졸업생들이 필수의료인 내외산소(외과-내과-산부인과-소아과)로 몰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의사의 진가는 생명을 살리는 바이탈(vital) 분야에서 발휘된다는 사명감이 넘쳐났다. 이들이 의료강국 대한민국의 디딤돌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명감 하나로 버티는 시대가 아니다. 중증외상센터의 주요 구성원인 외과, 흉부외과 전문의들의 노동 가치를 제대로 올려줘야 한다. 수술할수록 적자가 쌓인다는 넋두리가 왜 나오는가.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가(건강보험 적용)를 너무 오래 방치했다. 지방 의사 부족을 해결하는 방안도 수가 조정에서 출발한다.

한때 중증외상센터가 관심을 끌자 많은 지역에서 설립 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뿐이다. 드라마 속의 멋진 의사는 지금은 하루 하루 돈 걱정으로 삶이 고단하다. 병원 경영진은 끊임없이 재정 상황을 압박한다. 정부, 지방자치단체들의 필수의료, 중증외상센터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 매일 마음 조리며 일하는 필수의료 의사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축 처진 그들의 어깨를 감싸 주고 사기를 올려줘야 한다. 드라마의 속의 멋진 의사는 지금 오랜 속앓이로 지쳐가고 있다. 그들이 생명을 살리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도록 정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원 정책을 서둘러야 한다. 새벽 2시에 갑자기 큰 사고를 당한 내 가족은 어디로 갈 것인가. 바로 중증외상센터 아닌가.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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