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약 먹으면 ‘독립생활’ 얼마나 더 가능할까?
‘매우 가벼운 증상’으로 치매 진단 후, 치료 없이 평균 29개월 ‘독립생활’ 가능...FDA 승인약 쓰면 평균 8~10개월 연장 가능
연구 결과에 따르면 ‘증상이 매우 가벼운’ 전형적 치매로 진단받은 뒤, 환자가 이렇다할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평균 29개월 동안 ‘독립생활’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증상이 매우 가벼운 치매로 진단받은 뒤, 환자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치매약으로 치료를 시작하면 평균 8~10개월 동안 ‘독립생활’을 더 연장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에 의하면 FDA 시판 승인을 받은 치매약인 도나네맙(상표명은 키순라)과 레카네맙(상표명은 레켐비)은 뇌 속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없애는 일종의 ‘항체 치료제’(차세대 알츠하이머 치료제)다. 도나네맙을 쓰면 평균 8개월, 레카네맙을 쓰면 평균 10개월의 독립생활을 더 늘릴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치료 효과는 환자 개인과 약물 치료를 시작할 때의 증상에 따라 크게 다르다.
이 두 가지 치료제는 치매를 근본적으로 치료해주지 못한다. 치매의 진행을 늦춰줄 수 있을 뿐이다. 그동안 환자와 그 가족은 값비싼 치매약으로 치료받을 경우 얼마나 더 오래 독립적으로 삶을 꾸릴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임상시험 결과가 “치매약이 인지기능 저하를 몇 % 낮춰준다”는 형태로 발표됐기 때문이다.
치매약 연간 비용 3872만~4634만원…뇌출혈·뇌부종 부작용 우려도 없지 않아
이처럼 뜬 구름 잡는 식의 치료효과 설명 탓에, 현재의 치매 치료가 환자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연구의 제1 저자인 사라 하츠 교수(정신과)는 “치매 환자와 간병인이 치료의 비용과 위험에 대한 편익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이번 연구를 수행했다”고 말했다.
치매를 앓는 환자의 ‘독립생활’에는 두 가지 변곡점이 있다. 첫 번째 변곡점은 식사 준비, 운전, 각종 청구서 보고 돈 내기, 약속 기억하기 등 일상적인 일을 관리하는 능력이 뚝 떨어져 더 이상 독립적으로 살기 힘든 지점이다. 두 번째 변곡점은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돌볼 수 없어 목욕, 옷 입기, 화장실 이용 때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지점이다. 연구팀은 독립성과 의존성을 포함하는 이 두 가지 변곡점을 모두 ‘독립생활’의 범주에 넣어 치매약 효과를 계산해냈다.
연구팀에 의하면 레카네맙(성분명)은 2주에 1회, 도나네맙(성분명)은 4주에 1회 정맥주사로 투여된다. 연간 치료비(출시 당시 기준)는 도나네맙이 약 3만2000달러(약 4634만원), 레카네맙이 약 2만6500달러(약 3872만원)다. 미국 요양병원 등 보호시설의 연간 비용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이 든다. 또한 치매약을 쓰면 뇌출혈이나 뇌부종 등 위험이 뒤따를 수 있다. 이런 부작용은 보통 가볍고 저절로 사라지지만, 드물게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치매약 혜택 제한적이나, 환자·가족에겐 매우 진지한 문제일 수 있어”
치매약의 혜택이 이처럼 제한적이라고 해서 환자 및 가족에게 가치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연구의 공동 저자인 수잔 쉰들러 부교수(신경학)는 “환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더 오래 운전할 수 있는지, 개인 위생을 얼마나 더 오래 챙길 수 있는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벌 수 있는지 진지하게 묻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치매약이 특정 환자에게 도움이 될지 여부에 대한 질문은 매우 복잡하다”며 “의료적 요인과 환자의 우선순위, 선호도, 위험 허용 범위 등을 따져야 하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에 의하면 치매 환자가 ‘매우 가벼운 증상’이 아니라 ‘가벼운 증상’을 보인다면 이미 대부분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다.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더 오랫동안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연구팀은 전형적인 치매의 ‘가벼운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레카네맙으로 치료하면 26개월 동안, 도나네맙으로 치료하면 19개월 동안 독립적으로 자기관리를 더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팀은 이 같은 약물 효과를 충분히 이해하면 치매 환자 및 가족이 약물 치료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Assessing the clinical meaningfulness of slowing CDR-SB progression with disease-modifying therapies for Alzheimer disease)는 국제학술지 ≪알츠하이머&치매: 중개연구 및 임상 개입(Alzheimer's & Dementia: Translational Research & Clinical Interventions)≫에 실렸고 미국과학진흥회 포털 ‘유레카얼럿(Eurekalert)’이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