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라디오 음악 DJ는 어떻게 시작했나

[이성주의 건강편지]

2025년 02월 17일ㆍ1657번째 편지

첫 라디오 음악 DJ는 어떻게 시작했나

1960, 70년대는 라디오의 시대였고, 팝의 시대였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팝송을 듣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국내 음반사들이 대중성이 약한 음반은 아예 제작조차 않아서, 팝 마니아들은 해적판 LP로 욕구를 풀 수밖에 없었지요. 카세트 테이프가 급속히 보급됐을 때 영세업체들이 불법적으로 인기곡들을 함께 모아서 팔기도 했는데, 오자 투성이였습니다. ‘It's a heartache(잇츠 어 히타치)-Bonnie Tyler(보니 틸러)’로 표기된 테이프들이 버젓이 팔리던 게 기억나네요.

1960년대 라디오에서도 음악 정보나 발음이 틀리는 것이 비일비재했습니다. 1963년 동아방송(DBS) 공채 1기로 입사한 최동욱(1936~2023) PD는 이 문제로 속을 앓고 있었지요. 그는 9월 어느 날 ‘탑튠쇼’의 아나운서가 방송 전 연습 때 자신이 건네준 원고에서 Animals(애니멀스)의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을 “다음 곡은 아니말스의 하우제 오프 리싱 선입니다”로 읽자 화를 벌컥 내며 원고를 집어던지고 스튜디오를 뛰쳐나와 버렸습니다. 방송 30분 전에! 방송부장 최창봉(1925~2016)이 부랴부랴 뛰어와서 달래다가, 최동욱에게 DJ를 맡겼습니다. 대한민국 첫 라디오 DJ가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최동욱은 고려대 국문학과 출신으로 팝송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학창시절 종로 음악감상실 ‘디세네’에서 “음악 소개를 칠판에 적지 말고 말로 하자.”고 제안했고, 여러 음악감상실에서 DJ를 맡았을 정도였기 때문에 DBS의 음악 프로들은 그야말로 대박을 쳤습니다. 특히 ‘3시의 음악 다이얼’에선 전화로 음악 신청을 받아 틀어줬는데, 광화문 전화국이 일시 마비되곤 했다고 합니다.

DJ는 음반을 의미하는 ‘Disk’와 ‘몰이꾼, 경마 기수’ 등의 뜻이 있는 ‘Jockey’의 합성어이죠? 미국에서 라디오가 보급되던 1920년대 비슷한 일을 하는 직업군이 처음 등장했고, ‘디스크자키’라는 용어는 1935년 라디오 방송 해설자 월터 윈첼이 처음 썼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1960년대 종로와 음악 다방에서 시작해서 라디오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했지요.

최동욱의 뒤를 이어 이종환(1937~2013), 박원웅(1940~2017), 황인용(1940~), 김광한(1946~2015), 김기덕(1948~) 등이 전국구 스타로 이름을 떨치고 전남 순천 출신인 백형두(1945~2022)는 부산에서 활약하다 전국구로 합류했지요. 영남권에선 대구에서 활약하다 부산으로 옮긴 도병찬(1949~)이 공부하는 DJ로 유명했고요. 모두 해외 대중음악에 대해 연구하고, 음반을 구해서 들려주는 전도사였지만, 이 가운데 많은 분들이 지금은 음반을 틀 수가 없는 곳에 있네요.  지금은 DJ의 뜻도 많이 바뀌었죠? 1990년대엔 뮤직 비디오를 틀어주며 음악 방송을 진행하던 VJ(비디오 자키)가 인기를 끌었고, 지금은 힙합 DJ, 일렉트로니카 DJ 등 음악 DJ들이 한 음악 장르로서 활약하고 있지요.

한 해 전 오늘은 국내 최초의 DJ 최동욱이 조용하게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전통적 의미의 음악 DJ의 시대는 저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팝과 록의 시대도 함께···. 그러나 얼마 전 빌보드 앨범 200 차트를 보다가 적잖이 놀랐습니다. 절반 이상이 흘러간 팝송들이었기 때문이었지요. 팝 명곡들이 클래식 음악처럼 자리잡고 있는 걸까요? 옛날 음악 DJ들이 틀어주었던 팝 명곡들은 지금도 생활 곳곳, 영화나 드라마, CF 등에서 사람들의 정서를 달래주고 있지요.

DJ가 떠오르는 날, 여러분이 좋아하는 음악 한 곡 들으면서 잠시 추억에 젖는 것은 어떨까요? 옛 추억이나 사람들을 떠올리며···. 감정과 발맞춰가는 음악은 마음 건강에 더없이 좋은 영양제인데···.

오늘은 이 노래 빠뜨릴 수 없겠죠? 윤시내의 ‘DJ에게’입니다. 윤시내는 서울예고를 졸업한 엘리트 가수로 미8군에서 가창력을 뽐내다 영화 ‘별들의 고향’ 주제곡 ‘열아홉살이에요’와 ‘마리아’ 등의 노래로 음악계에 존재를 알렸지요. 1978년 ‘공연히’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고 ‘난 모르겠네’ ‘열애’ ‘천년’ ‘고목’ ‘공부합시다’ 등의 히트곡을 냈지요. 한편, 1856년 오늘은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프란츠 리스트가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인 ‘로렐라이’를 우크라이나의 소프라노 옐레나 두도흐킨과 미국 지휘자 스티븐 카리도얀스가 지휘하는 NEC 유스 심포니의 협연으로 감상하겠습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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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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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k*** 2025-02-17 09:49:49

      옛 추억이 떠오릅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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