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1년] 의료공백 속 3조원 재정 손실…해법은 아직

전공의 복귀 난항 의료 붕괴 위기...의대 증원 합의점부터 찾아야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이 1년째에 접어들었다. 지난 1년간 양측의 주요 사건을 정리했다. [그래픽=코메디닷컴 DB]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며 촉발된 의료계와 정부 간 의정 갈등이 1년을 맞았다. 지난해 2월 2025학년도 의대 정원 1509명 증원 계획을 발표한 이후 의료계 불만은 극에 달했으며, 이로 인해 대규모 전공의 이탈과 의료 공백 사태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환자 사망 사고가 다수 발생했고, 국가 재정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갈등은 봉합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

3조3000억원 재정 손실...의료 붕괴 위기

의대 정원 확대 강행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집단 이탈하면서 의료 현장은 사실상 붕괴 위기에 처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 전국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초과사망이 3136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초과사망이란 통계적으로 예측된 평균치를 초과해 발생한 사망자 수를 뜻하며, 이 수치는 심부전, 패혈증, 무산소성 뇌손상 등 대형병원에서 주로 치료하는 중증 환자들에게서 두드러졌다.

요양병원과 중소병원에서 발생한 환자들이 대형병원의 의료 공백으로 인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사망자 증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는 의료 인프라와 시스템이 전공의들의 역할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 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재정 손실도 막대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안도걸 의원은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국민건강보험 재정 및 추가 세금이 1년간 약 3조3000억 원 이상 투입됐다”며 “현재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유사한 지출이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료=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의원실]
전공의 복귀 특례에도 지원자 ‘한자릿수’…해법 난망

정부는 사직 전공의들의 복귀를 추진하기 위해 특례 조항을 발표했다. 기존에 전공의들은 사직 후 1년 내 같은 병원이나 전문과목으로 복귀할 수 없는 규정이 있는데, 이번 사직 전공의들에게는 예외를 두겠다는 방침이다. 기존에 수련하던 병원으로 복귀가 가능하도록 조치해 빠르게 의료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전공의들의 복귀는 요원하다. 특례 조항을 내세우는 것보다 의대 증원 철회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전국 221개 수련병원이 사직 레지던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상반기 모집에는 대상자 9220명 중 199명(2.2%)만 지원했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정부가 필수의료과로 내세운 진료과의 지원율은 모두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흉부외과와 산부인과는 전국 수련병원을 통틀어 각각 2명과 1명만이 지원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이달 3~4일에는 상반기 인턴 모집도 진행했지만, 이른바 '빅 5'로 알려진 서울 주요 상급종합병원도 지원자가 한자릿수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의정갈등 1년] 의료공백 속 3조원 재정 손실…해법은 아직
정부에서는 2026학년도 의대 정원에 대해서는 원점 협의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의료계는 의대 교육 정상화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대한의사협회 주도로 이뤄진 의료계 총궐기대회 문구. [사진=뉴스1]
이에 의료계에선 "정부가 의대 증원의 주요 근거로 내세운 필수의료과가, 아이러니하게도 의대 증원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며 "현재 필수과에 남아 있는 레지던트 대부분이 전문의 취득을 1년 앞둔 4년 차라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부터는 필수과 전문의 배출이 없을 수도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의정갈등 해결 이후에도 필수과 기피 풍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미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한 상황에서 신규 국시 합격자까지 10분의 1로 줄며 향후 의사인력 공급에도 차질이 생기게 됐다. 지난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 따르면 제89회 의사 국가시험 최종 합격자는 269명이다. 전년도 합격자(3045명)와 비교해 약 91%가 줄었다. 심지어 이들 합격자 중 52명은 외국 의대 출신이었다.

이는 의정 갈등 여파로 대다수 국내 의대생들이 휴학계를 제출하면서 생긴 결과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은 올해도 휴학 투쟁을 지속하기로 의결한 상황이다. 극적인 상황 반전이 없다면 올해 상반기에도 이들의 복귀는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 회복 가능한 돌파구는?

정부는 2026학년도 의대 정원과 관련해 의료계와 대화를 통해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정부와 의료계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협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의료계 대표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구체적인 의료개혁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는 한, 갈등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의대 교육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 협력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지난달 8일 제43대 의협 회장으로 당선된 김택우 회장은 "(전공의 복귀를 위한) 정부의 특례 방침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현 상태로는 의대교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제대로 된 방편을 제시해야 이후 대화가 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의학 연구와 교육에 관해 국내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역시 올해에는 소통과 협력을 주요 과제로 천명했다.

지난달 취임한 한상원 신임 의학한림원장은 "의학한림원은 학문적 독립성과 가치중립성을 지키면서도 정부나 국회, 공공기관 및 의협·대한의학회 등과 협력해 보건의료 수준을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이와 관련해, 오는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개최하는 '의료 인력 수급 추계 기구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는 의정갈등 해결을 위한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공청회를 통해 의료계와 정부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의대 정원 확대 논의는 1년 더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합의 도출이 2월 뒤로 미뤄지면 의대 수업 및 실습 일정에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의대생 복귀 추진 역시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지난 1년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국민 건강과 국가 재정 모두에 심각한 상처를 남겼다. 대화와 협의로 새로운 합의점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논의가 본격화될 올해가 의정 관계 회복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장자원 기자
    김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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