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치닫던 일상이 마술로 바뀌는 순간은
[차 권하는 의사 유영현의 1+1 이야기] 21. 토마스 만 '마의 산'(Zauberberg)
19세기까지 ‘전신 쇠약’을 일으키는 병을 ‘소비병’(consumption, 소모)으로 불렀다. 오늘날 우리가 ‘폐결핵’이라고 부르는 전신 쇠약을 일으키는 병이 대표적인 소비병이었다. 1882년 코흐가 결핵균을 발견하였고, 결핵균에 폐가 감염되어 폐가 파괴되는 질병의 실체가 정립되었다. 코흐는 이 공로로 1905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하였다.
결핵은 인류 역사에서 흔한 병이었다
시름시름 앓다 쓰러지는 소비병인 폐결핵은 세계에서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의 하나였다. 단기간에 폭발적인 사망을 일으켰던 팬데믹(pandemic) 감염병은 아니었으나, 오랜 시간 지속적인 사망자를 낳았다.
투병하는 기간이 길었으니 사연도 많았다. 결핵 환자는 여러 예술작품에 등장한다. 특히 결핵 환자가 등장하는 명작 소설들이 많다.
문학작품에서 결핵은 인물들의 내면적 고통과 사회적 현실을 조명하는 역할을 한다.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에서 판틴은 비참한 삶을 살아가다가 결핵으로 죽는다. 그녀의 죽음은 장발장이 딸 코제트를 보호하려는 결심을 강화한다.
알렉상드르 뒤마 '춘희'에서 마르그리트 고티에는 결핵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포기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장치가 된다.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에서 린턴의 죽음은 가문의 비극과 폭풍의 언덕의 어두운 분위기를 심화시킨다.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에서 마르멜라도프는 결핵에 걸린 아내 카테리나와 함께 극도의 빈곤 속에서 살아 소설의 비극적 요소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에서 결핵으로 죽는 제인의 친구 헬렌 번즈는 제인에게 신앙과 용기를 가르쳐준다.
주인공이 결핵 환자는 아니지만, 결핵이 배경이 된 걸출한 소설 한 편이 있다. 토마스 만의 '마(魔)의 산'이다. 소설은 23세의 상인 한스가 결핵요양원에 있던 사촌 형제 요아힘 침센을 문병하면서 시작된다.
결핵요양원은 결핵 환자들이 모여들던 곳이다. 그곳은 회복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기도 했다. 한스는 그곳 의사에게서 결핵 가능성을 주의받고 7년 동안 요양원에 머문다.
토마스 만 '마의 산'은 "모든 것은 어느 한순간, '그러면 다 끝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남기면서 시들어가는 듯한 감정을 주었다"로 시작한다. 인생의 유한성과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에 대한 이 질문은 전체 이야기의 중심 문제이다. '시들어가는 듯한 감정'은 그가 거주하는 산속의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과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상징한다.
이 첫 문장은 이 소설이 한스가 산속의 요양소에서 겪을 내적 갈등과 혼란도 예고한다. 그리고 내면적 탐색과 성찰, 그리고 자아 발견의 과정이 다루어질 것임이 이 질문 하나에 모두 통합되어 있다.
소설의 무대는 다보스의 베르그호프 요양원이다. 가상의 공간이지만 현대 다보스포럼이 개최되는 지역에 소재한 발트호텔(Waldhotel)은 자신들의 전신 포레스트요양원이 이 소설의 무대가 된 베르그호프요양원이라고 주장한다. 호텔의 홈페이지에는 1911년 호텔의 전신인 요양원이 자리잡고 있었다며 과거 건물의 사진도 게시하고 있다.
결핵약인 스트렙토마이신(1943년)과 이소지아니드(1952년)가 개발되자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던 결핵 요양원 수요는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1957년 포레스트결핵요양원은 발트호텔로 확장 개조되어 현재까지 이른다.
요양원은 전 유럽에서 유복한 결핵 환자들이 모여들던 곳이다. 그들은 주변 환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고는 자신들에게도 머지않은 장래에 동일한 운명이 닥칠 것이라고 예감한다.
소설의 무대가 된 20세기 초에는
결핵의 끝은 일반적으로는 죽음으로 귀결되었다. 아직 죽음에 이르지 않은 사람들은 하루 대부분을 누워서 안정을 취할 뿐이다. 그들은 죽음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갔다. 죽음에 대해 전혀 고민해 본 적이 없던 한스는 죽음을 대면하면서 인식의 변화를 겪는다.
소설은 결핵 앓는 환자의 고통보다는 이들을 대하면서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가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소설에 등장하는 요양원 환자들은 주인공 한스의 내면 성장을 위해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한스를 이성과 믿음, 의무와 일이 존재하는 평지 세계로 되돌려 보내기 위하여 노력하는 제템브리니, 매력적인 푸른 눈과 관능적인 외모를 소유하여 한스의 사랑 고백을 받아내는 클라우디아 쇼사, 육체를 타락되고 부패한 것으로 생각하고 건강을 비인간적인 것으로 보며 오히려 병과 죽음을 찬양하는 나프타, 건강과 삶을 긍정하는 디오니소스적 인물 페페르코른, 병이 완쾌되지도 않았는데 요양원 생활에 지친 나머지 하산해 다시 군대로 돌아간 요아힘 침센.
이들과 얽혀 인식의 모험을 계속하던 한스는 정신이 죽음에 지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는 더 산에 머물지 않고 현실 세계와 직접 맞서기로 한다.
소설은 그가 1차 대전에 참전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유일하게 이탤릭체로 표기하였다는 문장 '인간은 선과 사랑을 위해 결코 죽음에 자기 사고의 지배권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에 작가의 주장이 담겨있다.
소설 속 차는 느린 시간 흐름과 높은 산 속 요양소 생활의 상징으로 기능하면서, 인물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한스가 요양소에 처음 도착한 후
그는 차를 대접 받는다. "차를 가져다주었다. 그는 호기심 반,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 반으로 그 차를 마셨다. 따뜻한 차가 그의 몸을 녹이며 긴장을 풀게 했다." 차는 그가 요양소의 생활에 들어가는 첫 단계로, 다소 의식적인 성격을 띤다.
요양소의 정기적인 차 시간도 등장한다. "매일 오후 네 시,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모여 차를 마셨다. 이 시간은 정해진 의식이었으며, 따뜻한 차와 함께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기도 했다." 차는 요양소 생활의 규칙성과 사회적 교류를 의미한다.
쇼사가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한스는 그녀에게 강한 매혹을 느낀다. "쇼사가 찻잔을 들고 천천히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한스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끌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차의 향기가 그녀의 매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차는 그들 사이의 감정적 긴장감을 묘사하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제템브리니와 한스가 철학적 논쟁을 나누는 중에도 차는 등장한다. "그들이 논쟁을 벌이는 동안, 제템브리니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차 한 모금을 마셨다. 차의 따뜻함이 그의 목을 적시며 다시 말할 준비를 하게 했다." 차는 논쟁 속에서도 이성적이고 침착한 대화를 이어가는 수단이 되었다.
페페르코른과의 교류에서도 차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페페르코른은 찻잔을 들고 조용히 차를 마셨다. 그의 강렬한 눈빛과 대비되는 그 행위는 그가 내면적으로 평온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차는 차분함을 찾으려는 시도에도 쓰였다.
한스는 혼자 있는 시간에도
차를 마시며 내면적으로 깊이 성찰한다. "한스는 차 한 모금을 마시고, 천천히 창밖의 안개 낀 풍경을 바라보았다. 차의 따뜻함이 그를 감싸며,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장면에서 차는 한스의 내적 성찰을 돕는 매개체로, 그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감정을 정리하고 사상을 탐구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마의 산'은 한스가 자신을 성찰하면서 보낸 요양원이 소재한 공간이자 정신적 철학적 여정을 거친 상징적 장소이다. 토마스 만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모호한 이 무대에서 주인공 한스를 통해 다양한 질문을 다루었다.
'마의 산'의 독일어 제목 'Zauberberg'는 영어 뜻이 ‘Magic Mountain'(마법의 산)이다. 이곳에서 한스는 치열하게 고민하다 애벌레에서 나비가 된다. 이곳은 소설 제목대로 마법(매직!)의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차는 이 무대를 매직으로 만드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유영현 엘앤더슨병원 진료원장